수필속기달인 정상덕 속기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네요!

by 최고관리자 posted Feb 06,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사로 보기

 

[와플in탑골]“똥이나 먹어” 김두한의 말은 어떻게 기록될 수 있었나

 

[와플in탑골]“똥이나 먹어” 김두한의 말은 어떻게 기록될 수 있었나
 

“제가 속기 배울 때는(1980년대) 좀 암울한 시대였죠. 기록할 말이 별로 없었죠. 기록할 말이 많으면 속기사도 신이 나는데….”

직업은 변한다. 없어지고 생기고, 있는 것도 변한다.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와플in탑골>은 사라진, 사라질 모든 일과 노동에 대해 다룬다. 첫번째로 만나 본 일은 정부수립 이후 72년 넘게 대한민국 의정사를 기록하고 있는 ‘속기사’다.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 속기’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있는 ‘수필(手筆)속기사’다. 수필속기 달인으로 불리는 정상덕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이사를 만났다.
 

1966년 9월 22일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이 오물이 든 보따리를 옆에 두고 사카린 밀수사건을 추궁하고 있다. 정일권(왼쪽) 당시 총리는 곧이어 닥칠 똥물세례를 짐작하지 못한 채 네모난 박스를 궁금한 듯 쳐다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6년 9월 22일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이 오물이 든 보따리를 옆에 두고 사카린 밀수사건을 추궁하고 있다. 정일권(왼쪽) 당시 총리는 곧이어 닥칠 똥물세례를 짐작하지 못한 채 네모난 박스를 궁금한 듯 쳐다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6년 9월 22일 본회의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속기록 일부.

1966년 9월 22일 본회의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속기록 일부.

- 김두한 의원 :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장내소란) (“산회 선포해요”하는 이 있음)

- 부의장 이상철(李相喆) : 오늘은 이로써 산회를 선포합니다(오후 1시 6분 산회).

1966년 9월 22일 본회의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속기록 일부 내용이다. 오물투척 사건으로 알려진 그때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건 오물을 뒤집어 써가며 속기한 속기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생한 역사의 순간을 전달한 수필 속기는 점, 선, 선의 길이, 방향, 직선, 사선 등 속기부호를 익혀서 기록한다.
 

수필속기

수필속기

속기의 역사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의 기록된 첫 회의는 1946년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때 부터다. 당연히 손으로 쓰는 수필 속기였다. 회의가 기록되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 속기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독재 정권 시절엔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고 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아 속기가 무의미했다. 1984년에 속기사가 된 정 이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속기사가 거의 없었죠. 당시 국회, 공공기관 몇 군데 말고는 속기사가 없었죠.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국회도 매년 뽑지를 않았고, 있는 사람도 해직되고 회의도 잘 이뤄지지 않았죠. 공적인 논의 자리가 많이 축소된 그런 시대였죠. 좀 암울한 시대였죠.”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윤성민 국방부장관의 진상발표후 야당측의 이의제기로 자동연기된 지난7일의 국방위원회에는 속기사만 앉아있고 의석은 텅텅비어있다. /(1985.6.7 경향신문 자료사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윤성민 국방부장관의 진상발표후 야당측의 이의제기로 자동연기된 지난7일의 국방위원회에는 속기사만 앉아있고 의석은 텅텅비어있다. /(1985.6.7 경향신문 자료사진)

수필 속기는 대부분 부호문자로 쓰이기 때문에 속기를 배우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은 못 알아볼 확률이 100%에 가깝다. 같은 속기사끼리도 각자 필체가 달라 서로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정 이사는 “제 PC 밑에 여러 종류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들이 쓰여있는데 수필속기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기가 개인의 비밀노트로 활용되는 것이다. 정 이사는 “평소 대화나 전화통화를 하면서 수필속기로 다 기록하는데 추후 내용을 잊어버려도 다시 보고 정확히 알 수가 있다”고도 했다.
 

정상덕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이사가 쓴 수필속기.

정상덕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이사가 쓴 수필속기.

수필 속기는 1990년대 중반까지 주종을 이뤘다. 그러다가 ‘속기 키보드’가 탄생하며 급격히 사라져 간다. ‘속기 키보드’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시간’ 때문이다. 수필속기는 부호문자이다 보니 이를 다시 다른 사람이 해독가능한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거쳐야했다. 속기사 시험에서도 5분 동안 속기를 하면 한글로 옮겨적는 그의 12배인 1시간을 옮겨 적는 시간으로 줬다고 한다. 이같은 작업을 번문(飜文)이라고 하는데 실무에서 1시간짜리 회의를 속기하면 번문을 하는데 5~6시간이 걸렸다. 회의록이 필요한 곳에선 ‘속기인데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타박을 받았다. 정 이사는 “어떤 경우에는 해당 부서장이 못 기다려 속기업무를 보고 바로 말로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며 “번문을 빠르게 하려고 개인적으로 타자기를 구입해서 사용해 봤고 속기 약자도 만들고 속도 연습도 했지만, 속기록을 빨리 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수필속기에 한계를 느낀 정 이사는 1994년 최광석, 손석련 동료 속기사와 같이 속기 키보드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스테노픽처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형 CAS속기 키보드다. 이 속기 키보드는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국회와 지방의회의 회의장, 자막방송, 속기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 CAS속기 키보드

스마트 CAS속기 키보드

수필속기에서 디지털 속기로의 전환점을 만든 장본인인 정 이사가 속기사로서 바라는 점이 있을까. 뜻밖에도 그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록물관리법에 ‘속기’라는 문구는 있지만, 속기록을 작성 안 했을 때 벌칙조항은 없어요. 정부기관에서조차 기록을 잘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회의 내용 없이 종이 한 장에 통과 여부만 기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어떤 얘기를 했고 어떻게 결정됐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회적 갈등 비용이 쓰이고 있고요.” 정 이사는 “모든 회의체에 속기사에 의한 속기록이 의무화된다면 투명한 기록으로 사회적 갈등 비용이 훨씬 줄어들 거라면서 속기사법이 제정이 되어 속기사법에 의한 기록이 되는 나라, 그런 ‘속기스러운’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서 만나볼 수 있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